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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족구가 이렇게 무서울 줄 몰랐어요

따윤 2025. 6. 5. 12:35

캐나다에 온 이후로, 본의 아니게 연1회 한국을 들르고 있다. 처음엔 이런저런 사정 때문이었는데, 자식을 낳고 보니 손자를 자주 보여드리지 못하는 것도 불효여서 최대한 자주 부모님을 뵈러 들어가고 있다. 24년도에는 2월 경,,거의 생후 9개월 정도 되었을 때 방문했었고 올해는 약간 늦어져서 5월이 돼서야 한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올해는 특히 좋았던 게, 웨스트젯에서 올해부터 캘거리-인천 직항노선을 런칭해서 더 이상 벤쿠버에서 갈아탈 필요가 없어졌다는 사실이다. 경유 한 번 하려면 거의 7시간 정도는 낭비해야 하기에 정말 반가운 소식이었다. 대신 작년에는 대한항공을 타고 다녀왔는데, 올해는 웨스트젯이라 비행기 컨디션이 좀 달랐지만,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렇게 크게 차이나는 지도 몰랐다. 아니 일단 차이를 느낄 겨를이 없었다...어린 아기와 함께 하는 비행은 나의 예상과 너무 달랐다. 

 

일단 작년과 다른 점은 더이상 베시넷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개월 수도 개월 수고 몸무게도 많이 나가고.. 대신에 2번째 생일이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lap-seat으로 공짜 비행기표를 받을 수는 있었다. 사실 이것 때문에 무리하게 5월에 나가게 되었다. 7월이면 24개월이기 때문이었다. 

캘거리 공항 게이트 앞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있다.

 

사실 와이프가 아이와 먼저 나가는 방안도 고려했었는데, 좌석이 2개도 아니고 혼자서 아기를 끌어안고 열 몇 시간을 앉아있는게 가능할지가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캐나다 맘카페에도 22개월짜리 아이를 앉히고 가는 비행이 가능할 지 문의하는 글을 올렸었는데, 비추하는 비율이 더 높았다. 차라리 그냥 좌석을 하나 더 사라고 하더라. (이게 정답이었다. 아님 프리미엄 이코노미로 가거나

 

하여튼.. 이래저래 해서 결국 셋이 함께 비행을 하기로 했고, 좌석을 2개만 하는 대신에 extra leg room이 있는 economi의 가장 앞 좌석을 추가금 인당 12만원 정도를 주고 예매했다. 

extra leg room에 이불을 깔고 누운 모습

 

앞에는 다리를 쭉 뻗어서 벽에 닿을 정도의 상당한 공간이 있었기에, 아기를 눕혀서 갈 수 있었다...만 지금에 와 생각해 보니 이게 패착이었다. 무슨 이유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코노미 앞쪽 부분 (9열) 이 뒷쪽 열들에 비해 상당히 추웠고, 또 어쩔 수 없게 하긴 했지만  바닥에 눕히는게 비 위생적이기 때문이었다. 이는 결국 수족구로 연결되게 된다..

 

수족구 발병 타임라인

5월 17일

장시간 비행에서 오는 피로와 추위, 습도 변화 그리고 시차 등으로 인해 상당히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한국에 내리고 바로 그 다음날 아이 다리에 뭔가 발진 같은 게 보이기 시작했다. 

슬슬 발진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는 중

 

사실 우려스러웠던 점이,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이틀 전에, 다니던 데이케어 센터에서 아동들 중 일부가 수족구가 걸려서 귀가조치 했다는 연락이 왔었다. 이 연락을 받자마자 와이프가 가서 아기를 데려오긴 했는데, 사실은 이미 감염된 후였던 거였다. 수족구의 잠복기인 약 5일 정도를 지나고, 한국에 오자마자 수족구가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열도 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즐거워야 할 한국 여행이 지옥도로 변화기 시작하는데..

 

 

수족구 - 병 이름답게 손, 발 그리고 입에 수포로 발전하는 발진이 생기는 병이다. 상당히 아프다고 하고, 특히 입 안 목구멍에 나는 수포 때문에 유아의 경우 아무것도 먹고 마실수가 없다. 어른은 탈수의 위험을 알기에 억지로라도 먹고 마실수 있지만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는 그냥 이유없이 음식물 섭취를 거부하는 것이다. 

 

딸래미도 발진이 올라오기 시작하고나서부터 이유없는 짜증이 늘더니, 음식을 전혀 입에 대질 않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물조차 마시는 것을 거부했다. 급하게 동네 소아과를 찾아 갔더니, 수족구 자체보다는 수족구로 인해 물을 마시지 않아 올 수 있는 탈수가 정말 무서운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계속 물을 마시지 않을 경우 병원에 입원해서 수액을 맞히는 게 나을 것이라고도 했다. 

 

급한대로 해당 소아과에서 1시간짜리 수액을 빠르게 맞추고 집에 왔다. 당장의 수분 보충은 할 수 있었으나 계속 물을 거부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숟가락으로 포도주스를 몇 숟가락 먹일 수는 있었으나, 그게 다였다. 한 번도 주지 않았던 아이스크림도 조금 먹긴 했지만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평소에는 그렇게 달라고 난리 피우던 과일 파우치를 눈 앞에 들이대도 거부하는 모습을 보니 충격이었다. 

 

5월 18일

계속된 음식물 섭취 거부가 일어났고..열도 계속 났다. 교차 복용 시키는 해열제도 그때그때만 들고 열은 계속 있었다. 또한 짜증도 짜증이지만 아기가 점차 기력을 잃는 게 눈에 보였다. 어쩔 수 없이 입원이 가능한 근처 병원에 입원을 시켰다. 송도에 있는 VIC 365 어린이 병원이었는데, 이때만 해도 여기를 이렇게 자주 방문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 날 부터는 기력이 없어서 계속 잠만 자려고 하고 자꾸 까무룩 눈을 감곤 했다. 아파서 내던 짜증도 더 이상 내질 않으니까 속이 타들어갔다. 더이상 짜증낼 기력도 없기 때문인 것 같았다. 의사 선생님이 보시더니 바로 입원해야 한다고 하셨고 수액처치를 내렸다. 수족구가 감염병이어서 1인 병실을 써야만 했는데, 첫날은 1인 병실이 없어서 수액실에서 하룻밤을 묵어야만 했다. 이 날은 정말 아이가 아무것도 안하고 잠만 자고, 그렇게 까불까불 하던 애가 아무 반응이 없으니 미치는 것 같았다.

 

거의 열 몇 시간을 내리 잔 것 같았고, 수액이 떨어질 때마다 바로바로 보충 해서 수액을 놔 주었고, 자다가 열이 오르면 수액줄에 들어가는 해열제를 그때그때 투여했다. 와이프와 나도 덩달아 거의 잠을 자지 못했고, 아이 고개가 떨어질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지만- 의사 진료에 따르면 탈수로 인한 무기력 증상이어서 의식을 잃거나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이렇게 아픈 아이의 모습을 처음 보는 부모로서는 무서울 수밖에 없었다. 가장 힘든 날이었다. 

 

5월 19일

아침에 일어나더니, 아이가 조금은 기력을 회복한 것처럼 보였다. 별 기대하지 않고 기내식에 딸려 나왔던 조그마한 너트바를 줘 봤는데, 딱딱해서 못 먹을줄 알았는데 의외로 잘 먹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수족구로 아픈 후 처음으로 열심히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니까 눈물이 났다. 신이 나서 편의점에 가서 초코너트바를 몇개 사 왔는데, 그것도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이제 좀 음식물을 넘길 수 있게 된 모양이었다. 

 

수액실은 창문도 없어서 답답하고 침대도 없어서 너무 답답했다. 이 날부터 1인실이 하나 비어서 거기로 옮길 수 있었다. 1인실 가격은 일당 약 30만원정도 했다. 나중에 보험금으로 다 청구 가능했다. 

1인실은 티비와 냉장고 옷장을 비롯해 화장실과 외부 세면대까지 전부 준비되어 있어 굉장히 편리하게 사용 가능했다. 특히 화장실이 방 안에 있는게 아주 편했다. 전망도 좋아서 송도 북쪽 시내를 볼 수 있었다. 

멀리 송도타워가 보인다.

 

 

5월 20일

이날부터 딸내미가 기력을 회복하기 시작해서 걷기도 하고, 음식도 제법 먹기 시작했다. 이에 덩달아 신이 나서 평소에는 주지 않았던 단 음식을 많이 먹였다. 단, 병원식은 안 먹더라는..단 것만 찾으려고 한다. 그래서 아동 병원식을 우리가 다 먹었다. 

편의점에서 각종 달달한 음식을 잔뜩 사왔다.

 

아동용 병원식인데 꽤나 잘 나온다.

 

영상물도 엄격하게 제한해 왔는데 애가 아프니까 다 소용 없었다. 유튜브도 엄청나게 보여주고,, 핑크퐁도 많이 보여줬다. 애가 아프고 병실에서 할 게 없어 심심하니 어쩔 수 없었다. 

 

증상이 호전되는 것과 별개로 발진과 수포는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았다. 발에 난 수포는 점점 빨간색을 띄어 가고 - 시간이 많이 된 수포들은 검정색으로 변해 갔다. 색이 짙어질수록 수명이 끝나가는 수포라고 한다. 

 

 

5월 21일

손등에 수액줄 꽂은 것 때문에 아기가 너무 답답해 해서, 의사의 허락 하에 4일만에 수액줄을 뺄 수 있었다. 이제 꽤 수분섭취도 스스로 하고, 우유나 배즙 같은 것들은 잘 먹게 되어서 내린 판단이었다. 수액줄과 수액걸이를 항상 달고 다녀야 해서 아이가 엄청 불편해 했는데, 이제는 막 병실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예전같은 모습을 좀 보여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한시름 놓였다. 

 

또 입원하고 처음으로 샤워를 시킬 수 있었다. 4일만에 하는 샤워여서 깨끗하게 머리도 감고 몸 구석구석을 비누질해서 닦아 주었다. 

 

 

점심을 먹은 후 의사한테 진료를 보고, 퇴원 처분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VIC병원에 머무르는 동안 한 의사가 귀를 살펴 볼 때 상처를 내고, 그게 또 감염이 되어서 항생제를 한동안 먹어야 했다. (이거 때문에 예약해둔 호텔도 못 갔다) 약 때문인지 바이러스 때문인지 몰라도 간 수치가 높게 나와 나중에는 간 초음파도 봐야 했다. 2.5주의 피같은 휴가 동안 거의 병원 신세를 져야 했고, 딸래미는 알게 모르게 간호사 트라우마도 생겼다. 병실에서 간호사가 들어오려고 문이 열릴 때마다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그거랑은 별개로 병원에서 목소리가 제일 크게 우는 것도 우리 딸래미인 것을 보면 엄살 심한 것은 나를 닮은 것 같다. 

 

퇴원할 때 쯤에는 병원이 위치한 송도 오네스타 건물은 이제 내 집처럼 편안해졌다. 다른 포스팅에서 공유하겠지만 건물 내 갈만한 밥집은 다 가봤고, 새벽에도 운영하는 1층 CU는 우리에게는 한줄기 빛과 같았다. 그래도 다시는 병원 때문에는 오고 싶지 않은 건물이다. 

한국의 편의점은 정말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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