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는 핑계로 요새 통 글을 못 썼다. 하다못해 일상이라도 끄적이면 좋을 텐데 이상하게 집에서는 티스토리에 손이 잘 안 간다. 뒤에서 아내가 지켜보고 있어서 그런가.. 누가 옆에 있을 때 창작 활동을 하는 것은 좀 부끄럽다. 특히 글처럼 뒤에서 바로 읽을 수 있는 것들은..
하지만 커가는 딸내미를 보면서 드는 이런저런 감정들을 그때그때 기록해 놓지 않은 것이 좀 후회스럽기도 하다. 키우느라 바쁘긴 하지만 또 적어놓을 수 있는 것들은 적어 놔야지.
어느새 회사 다닌 지도 일 년이 넘었다. 이 작은 도시에서 살은 지도 벌써 10개월이 넘어간다. 작년 이맘때쯤 출산 준비와 취업 준비로 눈코뜰 새 없이 정신없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든 것 같다. 전쟁 같은 1년이었다. 부모님의 도움 없이 갓난아이를, 그것도 외국에서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그 와중에도 직장생활은 착실히 했다. 월급 받아야 먹고 살 것 아닌가? 제일 큰 문제는 주거 문제였다. 코로나 이후 캘거리가 역사적으로 확장하는 바람에 지난 1~2년간 렌트비가 어마무시하게 올랐다. 어떻게 보면 잠시동안이나마 캘거리에서 떨어져 나와 이 메디신 햇이라는 작은 도시에 지내게 된 것은 행운일 수도 있었다. 세 식구는 원룸 콘도에서 살 수 없고 (생후 3개월을 거기서 버텼다), 캘거리의 2룸 이상이나 하우스 렌트비는 무조건 2천 달러를 넘기 때문에 월급의 절반 가량을 렌트비에 쏟아부어야 했기 때문이다.
메디신 햇에서는 그나마 리저너블한 가격의 2/2 콘도를 구할 수 있었다. 세 식구가 살기 아주 충분한 넓이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장점.. 바로 통근시간. 통근시간이 10분밖에 되지 않아서 7시 50분에 출근하면 8시면 자리에 앉을 수 있다. 5시 퇴근하면 5시 10분에 집 도착.... 서울에서는.. 아니 캘거리에서도 상상할 수 없었던 perk. 이게 삶의 질을 어마무시하게 높여 준다.
거꾸로 생각하면 대체 서울에서 하루 한시간~ 한 시간 반씩 출퇴근하는 삶을 살았으면 대체 갓난 아기 얼굴은 언제 보면서 살았지 싶다. 만약 6시 칼퇴를 한다고 해도 집에 오면 7시 15분~30분.. 지금 린이는 7시 반이면 자야 하는데. 옛날에 듣던 아빠가 퇴근하고 자는 아이 얼굴만 한번 쳐다보고 들어간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캐나다로 온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회사 업무는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지만)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다. 옛날 SK건설로 치면 프로세스 팀에서 하던 일을 하는데,, 대체 왜 토목환경 출신인 내가 이런 일을 하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서도. 하는 공사가 기껐해야 1~2억에서 크면 30억 원짜리 정도기 때문에, 보통은 PM 이 process를 담당하는 것 같다. 그리고 보통 PM은 Civil 출신들이 하고.. 그래서 PM 부사수로서 프로세스 설계를 도맡아 한다. SK건설에서 P&ID가 뭐야? 할 때가 엊그제 같긴 한다 이제는 이런저런 다이어그램도 잘 같다 붙이고 펌프도 설계하고 공정도 설계하고.. 재미있다.
특히 공정에 들어가는 이런저런 기계들..예를 들면 유량/유속계. 압력계. 염소소독시스템(그나마 이건 환경대학원에서 배운 내용이랑 많이 연관된다.) 밸브. 뭐 이런저런 계장 쪽 기계들을 직접 구매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마치 쇼핑을 하는 느낌이랄까... 집에서 가전제품을 하나 살 때도 이것저것 따지지 않는가? 최대출력, 전압, 용량,.. 등등. 이런 과정을 industrial 한 규모로 진행하는 것이다. 제품 카탈로그도 신중하게 봐야 하고.. 이런저런 계산서도 만들어서 검토하고 발주처랑 협의하고 한다. 새로운 일을 하면서 배우는 거라 재미도 있고 이런 과정 속에서 하루하루 성장하는 것도 느낄 수 있어 재미있다. 무엇보다도 내가 하는 일이 지역 주민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라 보람도 있고 이 새로운 사회에 한 명의 구성원으로서 이바지한다는 자부심이 들기도 한다.
'캐나다 생활 > 캐나다 직장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캘거리 시청 인턴 생활 (4) - 직장 내 인간관계 (0) | 2023.12.11 |
---|---|
캘거리 시청 인턴 생활 (3) - 인턴은 무슨 일을 하는가 (0) | 2023.11.28 |
캘거리 시청 인턴 생활 (2) - 첫 출근! (3) | 2023.11.27 |
캘거리 시청 인턴 생활 (1) - 지원부터 면접까지 (0) | 2023.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