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직장생활

한국 직장생활 3: 데이타베이스가 뭐예요?

따윤 2024. 2. 16. 04:56

15년도 3월, 새로운 팀으로 출근을 시작했다. 팀 규모는 20명 남짓으로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회사 조직도 상 현업 팀으로 분류되어 있는 팀이었지만 팀 성격은 주로 서포팅에 가까웠다. 건설회사니 만큼 설계, 시공, 또는 프로젝트 관리와 같은 전문 분야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 프로그램들을 일선에서 사용하는 유저들을 위해 유지, 보수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3D 모델링과 같은 프로그램을 다룰 경우, 보다 전문적 지식이 필요했기에 직접 프로젝트 소속으로 들어가 그 프로그램만 전담하기도 했다. 서로 담당하는 프로그램이 달라  팀원들 대부분의 업무가 서로 겹치지 않다는 점이 설계에서 넘어오는 나에게는 신선하게 느껴졌다. 

 

팀원들 대부분이 과장 이하로 전반적으로 젊은 팀이었다. 동기도 2명이나 있었고 비슷한 기수의 팀원들이 많아서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근기수 동료들은 대부분 성격이 좋았고 새롭게 들어온 나를 환영해주었다. 부장급 이상은 몇 명 되지 않긴 했으나 나이가 많아서인지 좀 거리감이 느껴졌다. 

 

 

내가 맡게된 프로그램은 화공 플랜트의 각종 공종에서 사용되는 모든 데이터를 통합해서 관리, 시간대 별 데이터 관리 및 공종 간에 불일치를 발견하고 관리하는 일이었다. 글로 적으니 쉬워 보이는데... 이 프로그램을 다루려면 일단 플랜트 전 공종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어야 했다. 어떤 공종이 있고 각 공종에서는 어떤 기기를 다루고...토목 이외의 공종에 무심했던 나는 여기서부터 여러웠다. 두 번째로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중간 이상의 지식이 있어야 했다. 서로 다른 프로그램 간에 데이타를 주고 받고 비교하고.. 데이타 구조에서부터 시작해서 데이터 통합 스키마 구성, 쿼리 짜기, 버전 및 로그 기록, 에러 발생시 대처법.. 아니 단순히 컴퓨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쉽게 배울만한 일이 아니었다. 오라클이라는 것도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세 번째로 프로그램 자체가 어려웠다. 나는 모든 프로그램이 Next만 누르면 깔리는 줄 알았는데... 프로그램 '까는 것' 자체를 하루 반나절을 배워야 하는 프로그램은 처음이었다. 개발자가 하는 일을 맛뵈기로 느낄 수 있었다. 

SmartPlant Foundation..모든 프로그램의 기초..
SPF...오랜만에 화면을 보니까 어질어질 하다

 

게다가 이 프로그램은 이 팀에서 딱 한 명이 맡고 있던 직무였다. 마침 전임자가 다른 회사로 이직이 결정되어서 후임을 모집하는 자리에 내가 뽑힌 것이었다. 컴퓨터 공학과도 안 나온 내가 배워서 수행하기에는 쉽지 않은 직무였다.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못한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아니면 누가 하랴? 라는 마음가짐으로 처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새 팀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맡은 직무인데 동료들을 실망시키기는 싫었다. 몇백 페이지짜리 메뉴얼을 몇 번이나 보면서 프로그램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DB에 대한 기초지식과 다루는 방법은 고맙게도 동료들이 옆에서 조금씩 알려주었다. 팀 대부분이 컴퓨터 관련 전공이라 물어볼 사람은 지천에 널려 있었다. 

 

그렇게 전임자의 단독교육과 일주일간의 제작사 연수, 주변 동료들의 도움 등으로 조금씩 원리를 이해하고 프로그램 사용법을 익혀 나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코딩이나 컴퓨터 구조 같은 것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DB의 동작에 대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 나를 믿고 시간을 투자해 준 덕분이기도 했다. 한 3~4개월 정도 지나자 맡은 프로그램에 한해서는 1인분을 하는 것 같았다. 사실 와서 일해보고 안 맞으면 퇴사하려고 왔었던 건데.. 일에 집중하다 보니 퇴사 생각은 다시 흐지부지 없어지고 말았다. 

 

사실 생각해 보면 이 때 퇴사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퇴사하고 일년동안 여행이나 가려고 했었고, 그 이후에 재취업 계획은 전혀 세워 두질 않았었는데 내가 취업했던 12년도를 기점으로 취직은 하염없이 어려워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설계가 하기 싫어서 나왔기 때문에 해당 경력을 사용해서 같은 직무로 취직하기도 싫었고 - 그 때문에 공기업에 지원하려 했었던 건데, 공기업 문화를 생각하면 사기업에서도 못 버텼던 내가 제대로 직장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원한다고 붙여주겠었느냐마는..) 이래저래 첫 직장에 남아 있던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일이 점점 익숙해지고, 팀원들과도 점점 친해지면서 회사 다니는 게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UAE로 출장도 갈 기회가 있었다. 회사 다니면서 첫 해외출장이었는데, 좋은 경험이었다. 출장이 아니면 절대 가보지 못할 도시인 아부다비도 가 봤고, 중동 한 가운데 있는 현장 사무실 경험도 했다. 일적인 부분은 둘째 치고 돈 주고도 하기 힘든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호텔방에서 본 아부다비의 모습
끝도 없이 펼쳐진 사막.. 현장으로 가는 길

 

 

현장 숙소의 모습..정말 할게 아무것도 없다 

이 당시에는 정말 열심히 일했던 것 같다. 혼자서 한 프로그램을 맡는다는 막중한 부담감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일적인 부분에서 좀 더 집중할 수 있고, 자율적으로 일의 일정과 목표를 잡고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된 면도 있다. 1년이 지나가면서 프로그램에도 많이 익숙해졌다. 그리고 어쨌거나 저쨌거나 팀에서 이 프로그램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나라는 점은 상급자들과 일정을 잡거나 맨아워 계산을 할때 유리하게 작용했다. 나에게는 이런 자율성 같은 것들이 중요했던 것 같다. 

 

 

 

또 회사 내에서 진행하는 이런저런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시기였다. 결혼도 하기 전이고 아무런 시간 제약이 없었으므로 퇴근 후에는 동아리 활동도 하고, 회사 내에서 하는 봉사활동도 열심히 참여하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정말 이것저것 빨빨거리고 많이 돌아다녔었다. 이후 이 봉사활동들이 나중에 또 내 커리어에...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그때도 알 수 없었지만..뒤돌아 생각해보니 정말 인생은 정말로 알 수가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