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직장생활

한국 직장생활 5: 김 대리, 오늘부터 사회공헌팀이야

따윤 2024. 3. 4. 02:13

그렇게 팀 이동에 대한 의사를 피력하고 나서, 당시 사회공헌활동을 담당하고 있던 홍보팀 팀원 및 팀장님과 면담을 가졌다. 홍보팀장님께서는 사외 전문가 채용보다는 사내의 검증된 공채 인력을 끌어오는 것이 더 리스크가 적다고 판단하셨다. 이건 당시 기업사회공헌 트렌드이기도 했다. 전공보다는 회사 문화를 더 잘 아는 사람을 쓰는 것. 또 대학교에서 다양한 활동을 기획해 본 경험도 남들과 다른 차별점으로 봐 주셨다. 결국은 어렵지 않게 OK사인이 났고, 팀 이동이 결정되었다. 

 

생각해 보면 한 번 이미 전공을 져버리고 팀을 이동했었기 때문에, 두 번째 이동은 그런 측면에서는 더 쉽게 결정했던 것 같기도 하다. 동시에 나를 믿고 받아줬던 시스템 팀에는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녀석 받아주고 키워줬었는데.. 하지만 의리가 내 미래를 책임져 주진 않는다는 나의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이럴 때만큼은 이기적이 되어야 했다. 조직은 개인의 커리어까지 생각해 주지 않는다. 그리고 나사가 빠지면 결국 다른 나사가 들어와 그 조직을 굴러가게 만들 것이다. 마치 DB가 뭔지도 모르던 내가 어떻게든 일을 해냈듯이 말이다. 17년 2월부, 그렇게 정든 두 번째 팀을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세 번째 팀인 홍보팀에서의 새로운 회사생활이 시작되었다. 

내 상황에 정확히 들어맞았던 책...재밌게 읽었다. 나도 당시 대리였다.

 


 

홍보팀은 겨우 6명의 작은 팀이었다. 제일 먼저 사회공헌활동 업무에 대한 인수인계를 받았다. 이미 기존에 틀이 잘 짜여져 있어서 새로운 활동을 바닥부터 기획할 필요는 거의 없었고, 일단은 있던 활동들을 어떻게 잘 운영하느냐를 중점적으로 배웠다. 그리고 대학생 때는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될 돈 관리도 함께 배웠다. 처음으로 회사의 회계관리 시스템인 SAP도 배워야 했고 어떤 식으로 연간 예산을 받고 집행하는지에 대해서도 배웠다. 

 

당시 사내 대표 프로그램은 임직원 기부 프로그램이었는데, 간단히 말하면 직원들에게 자발적으로 월급에서 일부를 자체 공제받아 매월 어려운 아이들에게 기부하는 일이었다. 임직원이 거의 5천명이었던 만큼 월별 기부금액도 상당했다. 한 사람이 만원씩만 기부한다고 해도 월 오천만 원..당시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지원 받는 아동들의 숫자도 600명에 육박했고, 서울시내 10여개 복지관이 참여하는 큰 프로그램이었다. 나도 신입사원으로 들어오면서 오리엔테이션 때 이 프로그램의 존재를 알았고, 자발적이라고는 하지만 거의 모든 친구들이 단돈 오천원이라도 반드시 가입해야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취지도 좋고 운영도 잘 되고 있는 프로그램이었지만 좀 오래된 기부모델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당시 젊은 직원들도 많이 들어오고 사회 분위기도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점차 자율을 중시하는 문화,,그리고 오래된 정(情) 중시 문화 - 대기업은 기업 내부 문화가 잘 안 바뀐다 -  에서 실리를 추구하는 문화로 변모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임직원들 사이에서는 대체 내가 왜 얼굴도 모르는 아이를 위해 월급에서 강제로 기부금을 떼어 줘야 하느냐는 문제의식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문제는 당시 임원이 이 프로그램을 창시한 분이셨고, 그 분이 계신 한 이 프로그램을 놓을 수는 없었던 상황. 새로 입사하는 임직원의 기부 가입률은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임직원이 더 자연스럽게 이 모델을 받아들일 수 있을것인가'가 참 어려운 숙제였다. 나도 가슴으로는 이해시키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일단은 실행해야만 했다. 사회공헌 담당자로서, 옛 것을 고수하려는 조직과 이해할 수 없는 기부를 거부하는 임직원 사이에 끼어서 꽤 고생했었다. 결국에는 당시 아동들과 임직원 사이의 만남을 더욱 적극 주선하고, 기부 이외에도 다른 봉사활동을 통해 복지시설과의 접점을 늘림으로서, 임직원이 기부 대상자들과 직접 만나 기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수 있도록 하려고 애썼던 것 같다. 

 

또한 조직에서는 새로운 담당자가 임명되었으니만큼 뭔가 새로운 시각의 프로그램을 원했었다. 하지만 팀을 이동하고 나서 얼마간은 기존 프로그램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파악하고 제대로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벅찼었다. 업무로 연결된 외부기관 담당자들과 인사를 하고 안면을 트는대만도 한 달이 넘게 걸렸었던 것 같다. 

 

또 사회공헌 담당자로서 필수적으로 다수의 임직원 앞에 서야만 했는데, 이게 정말 오랜만이라 적응하는데 힘들었다. 단체 봉사활동시 집결한 인원 앞에 서서 오리엔테이션을 해야만 했다. 또 딱딱한 업무를 위한 자리가 아니니만큼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약간의 유머 같은 것도 필요했다. 사람들을 원하는 대로 움직이려면 철판도 두꺼워야 했고 말센스와 리더십도 길러야 했다. 개인적으로 이게 봉사활동 기획보다 훨씬 어려웠다. 그래도 결국에는 어찌어찌 해냈다. 

 


 

업무는 사회공헌 담당이었지만 홍보팀에 속해 있는 만큼 홍보 업무에 대한 시각도 기를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모든 사회공헌활동은 홍보를 염두에 두고 했어야 했다. 그래서 보도자료 쓰는 법도 배웠고, 아침마다 스크랩 당번을 정해서 신문 모니터링 하는 작업도 했다. 기자들과 식사를 한다거나 하는 홍보팀의 주요 업무를 맡지는 않았지만 다른 팀원들이 어떤 식으로 일하는지 보고 팀에 융화되기 위해 애썼던 것 같다. 

 

팀원들도 다들 (나름) 괜찮았다. 지금까지는 공돌이들 사이에서 지내왔기 때문에 문과 출신 사이에 있는 것이 조금 어색하긴 했다. 그래도 소수로 구성된 팀이니만큼 나름 팀웤도 좋았고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한 가지 적응하기 힘들었던 점은, 홍보팀이 회사 C레벨과 가까운 조직이었던 만큼 임원과 그 윗 레벨의 입맛에 맞춰 기민하게 움직여야 했다는 것이 힘들었다. 계급간 사람이 적어 그 거리가 가까워졌다는 것은 더 높은 사람이 내가 하는 업무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내가 콘크리트 기초 설계를 할 때는 사장님이 기초 두께 왜 50cm인지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지 않는가? 사회공헌에서는 얘기가 달랐다. 가끔 어이없을 정도로 태클이 들어올 때가 있었다. 일 자체는 재미있었지만, 실무자로서의 자율성은 좀 더 떨어지는 것을 느끼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