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 차 -
캐나다 토목 엔지니어링 회사 취업기 (5)
Stantec이 거의 마지막 희망이었기 때문에, 불합격 통보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면접관 한 명의 링크드인 등록으로 합격에 대한 기대를 한 80프로는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충격이 컸습니다. 전화로 해주는 말은, 원래 자기네 회사에 다니던 애가 지원을 해서, 그 사람을 뽑았다 였습니다. 그 사람만 아니면 너 뽑았을 거라고..^^ 말이야 고맙긴 한데 떨어진 것은 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그 면접관이 이제 자기가 내 네트웍이 되어주겠다며 앞으로 자기네 회사에 비슷한 포지션을 뽑으면 도와주겠다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도와줬습니다. 면접까지 가지는 못했지만요) 이런저런 사정으로 가장 유력한 후보에 있던 회사에서 또 물을 먹으니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동시에 에너지 소모도 극심했습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잡서칭은 풀타임 잡과 똑같다고..하루 8시간 집중해야 하고 거기에 스트레스는 덤입니다.
잠시 낙담했지만 이대로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링크드인과 인디드를 통해 닥치는 대로 지원을 계속 했습니다. 마지막 면접 이후로 약 3주 가량을 회사 지원에만 쏟았습니다. 물론 학교가 마지막 학기였기 때문에 공부도 병행해야 했죠. 다행히 마지막 학기에는 3학점 한과목밖에 듣지 않아서 대단히 많은 시간을 잡서칭에 투자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에야 드는 생각이지만 생활비를 위해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는데..정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루 종일 전화기만 쳐다보면서 면접 연락이 오나 안오나 초조하하던 찰나, 5월 초에 드디어 한 회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MPE Engineering이라는 직원수 100여명의 중견회사였습니다. 포지션도 딱 원하던 Water 관련된 포지션이었고, 경험 쌓기 좋은 컨설팅 회사라는 점도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딱 하나 문제가 있다면..위치였습니다. 캘거리에서 3시간 정도 떨어진 Medicine Hat이라는 작은 도시에 있었죠. 거기서 전화가 와서 하는 얘기가
"내 책상에 니 Resume가 올라와 있어서 봤더니, 우리 포지션에 적절할 것 같아서 연락했어."
"진짜? 너무 고맙다."
"혹시 메디신 햇 와서 면접 볼 수 있어?"
"(편도 3시간인데??)응?? 잠깐만..?"
잠시동안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거 혹시 테스트인가??? 몇 초 사이에 수많은 고민을 한 결과, 1시간 면접 보자고 왕복 6시간을 쏟기는 너무 무리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이런 걸로 충성심 테스트 하기에는 여기는 캐나다였습니다. 그럴 리가 없죠. 요새는 대부분 온라인 면접을 하기도 하구요.
"아니 근데 면접은 혹시 팀즈로 볼 수 있을까? 나 캘거리 살아서."
"어 그래 맘대로 해. 언제가 좋아?"
의외로 쿨하더군요..? 그래서 면접은 온라인으로 하기로 하고 바로 다음 주에 면접이 잡혔습니다.
오랜만에 또 찾아온 기회였기 때문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습니다...만 그렇게 특별하게 더 준비한 것도 없었습니다. 제 포지션에 대해 잡 디스크립션 공부하고, 회사 홈페이지 둘러보고, 면접관 링크드인 찾아보고..준비한 답변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정도였죠. 이번에는 질문을 좀 신경써서 준비했는데, 면접관 세 명이 전부 이 회사에서 10년 넘게 일하신 분들이더군요. 그래서 질문을 '너네는 왜 이렇게 이 회사에서 오래 일했어? 뭐가 좋아?' 로 준비했습니다. 면접관들에게 회사 자랑을 할 수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에 살짝 좋아할만한 질문이고, 또 지원자의 관심도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드디어 면접날, 면접관은 3명이 오기로 했는데 두 명만 오더군요. 여느 면접처럼 본인들 소개 및 자기 소개가 이뤄졌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레주메를 보며) 너는 이런거 해봤다고? 이런 경험도 있겠네?"
"어 있지. 뭐가 좋았어."
"어 이런것도 해봤어? 이거 할 줄 알겠네?"
"어..알지?"
질문들이 전부 면접 질문들이랑은 조금 동떨어지게 그냥 대화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길게 대답하려고 해도 그렇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들을 많이 안 주더군요. 그냥 거의 단답식으로 대답했습니다. 몇몇 질문들은 준비한 대답을 할 수 있어서 그대로 대답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냥 제 경력에 대해서 확인차 물어보는 질문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한 20분 정도가 지났을까요? 벌써 질문을 하랍니다. 그래서 준비한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듣고, 면접은 총 30분을 못 채우고 끝났습니다.
면접이 끝나고 나서 좀 헷갈렸습니다. 이 면접관들이 제대로 면접을 보는 건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표정에 잘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보통은 면접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결과는 좋지 않았기 때문에, 큰 기대는 안 했습니다. 지원자에 관심이 많으면 이것저것 더 물어보니까 말이죠. 거의 희망을 접었습니다. 그래도 땡큐 이메일은 보냈죠. 언제나처럼요.
그런데.. 땡큐노트 이메일을 보낸 후 10분이 채 되지 않아 답장이 왔습니다. Offer 이메일이었습니다!
너무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어떤 면접은 1시간을 넘게 보고도 불합을 했는데 이렇게 간단하게 본 면접에서 합격을 하다니...그것도 면접 본 후 10분만에 오퍼를 보내주다니요. 너무 기뻐서 소리를 막 질렀습니다. 오퍼에는 5일 내로 답변을 달라고 했지만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사인을 해서 수락 답변을 보냈습니다. 저쪽에서 신속하게 결정해 준 만큼 바로 답변을 주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거리가 좀 있긴 하지만 캘거리에서 3시간이면 왔다갔다 못 할 거리도 아니었고, 캘거리에서 거리에 나앉는 것 보다는 훨씬 나았습니다. 무엇보다 포지션이 맘에 들었습니다. 여기서 경력을 쌓기만 한다면 3년 후에는 P.Eng를 딸 수 있고, 그 때 되면 더 좋은 직장으로 점프 뛰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었죠.
나중에야 드는 생각이지만 정말 취업에는 정답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면접 시간이 길 때는 떨어졌고 짧을 때는 붙었습니다. 또 노력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정말 이거야말로 운칠기삼..아니 운구기일(運九技一) 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 합격한 것이 면접을 잘 봐서가 아니고 그냥 나랑 잘 맞는 직장과 면접관을 만난 운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끔찍해지는 일인 것이 혹시나 이번 운때가 맞지 않았다면 다시 언제 이런 행운이 올 지 모르고, 그럼 4개월 뒤에는 꼼짝없이 빈털털이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을 수도 있었으니 말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파란만장한 취업 도전기는 끝이 납니다. 수치적인 결과를 살펴보면 총 33개의 지원서를 제출했고 그 중에서 5번의 면접을 봤네요. 정말 피말리던 23년 상반기였습니다. 앞으로는 직장에서 열심히 기반을 닦는 일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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